1. 1997년 . 大阪(오사카) / 長吉長原(나가요시 나가하라)
1997년 4월
1997년 4월, 나의 일본 생활은 오사카 다니마치선(谷町線) 종점 바로 앞 역인 나가하라(長原駅)역 근처의 고급 맨션이었다.
나는 재일교포 2세 형과 2LD 구조의 9층에서 함께 생활했다. 형의 방은 양실 구조였고, 내 방은 일식 다다미방(畳の部屋)과 베란다가 있었다. 처음 경험하는 다다미방이었지만 금세 익숙해졌다. 내 방 미닫이문을 닫아 놓으면 한낮에도 빛이 차단되어 어두컴컴해서, 가능하면 문을 열어 놓고 생활했다.
그곳 엘리베이터를 타면 늘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흘러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은 한 방향 접이식 슬라이더 문이었다. 출입문 입구는 망사 유리로 내부와 외부에서 볼 수 있는 구조였는데, 그 엘리베이터가 고급스럽게 느껴졌다.
오사카 날씨는 4월 초였는데, 아침저녁으로 약간 쌀쌀한 기운이 있었다. 나는 매일 베란다에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곤 했다.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잠자고 일어나면 일본말이 들리고, 또 잠자고 일어나면 TV에서 일본말이 흘러나왔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일본말을 하고 있어서 “여기가 일본이구나”를 실감해 가는 시기였다.
그곳 맨션에서 100m가량 떨어진 2층에서 형은 불고기집을 운영하고 있었고, 나는 1층 중식당의 주방을 맡게 되었다. 중식당 일은 일본에 도착한 지 일주일이 지나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은 편의점 이외에는 나가하라(長原) 주변을 둘러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약간 두렵기도 했다.
오전에는 일본어 어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중국집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재일교포 형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고, 웍 사용법도 가르쳐 주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것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일은 즐거웠고 재미있었다. 그리고 혼자 주방 일을 맡아 마감까지 해야 했기 때문에 전반적인 주방 흐름을 파악하기 쉬웠다.
홀에는 두 명의 파트타임 여고생이 만두를 빚고 있었고, 오전에는 별도의 작업실에서 제면 작업을 하시던 아주머니 몇 분이 계셨는데 오전 파트타임인 것 같았다. 홀의 여고생들과는 한일사전(韓日辞典)을 주방에 비치해 두고 소통했다. 내가 틀린 발음으로 일본어를 해도 이해해 주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언어의 순서가 같고 많이 닮아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주방 일 마감은 모두 청소한 뒤 큰 육수통에 수돗물을 받아 소 잡뼈를 넣고 약불로 맞춰 놓은 채 퇴근하는 방식이었다. 조금 납득하기 어려운 조리법이라고 생각했고, 화재에도 취약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재일교포 형은 문제없다고 했다.
이렇게 마감을 하고 근처 편의점에 들러 맥주 한 캔을 샀다. 매번 같은 시간, 점원은 말없이 나를 알아보는 듯했다. 나는 계산할 때마다 지폐만 사용해서 방 안에는 점점 동전이 쌓여 갔다.
일도 만족했고, 생활도 불편함이나 걱정이 없었다.
제일교포 형 어머니의 걱정
하지만, 일본에 온지 한 두달 지나면서 “내가 왜, 일본에 왔는가?” 라는 의문이 생기게 되었다. 이곳에 머물면 생활은 안정 될 것 같고, 유학 생활은 더더욱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생각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원하던 ‘일본 유학’은 솔직히 아니었다. 나는 일본인 무리 속에서 부딪히고, 깨지고, 때로는 그들과 싸우면서 진짜 일본을 배우겠다는 생각으로 이 유학을 결정했기 떄문이다.
여기서 생활은 안정되고, 또 어느정도 예측이 가능한 생활처럼 보였다. 나는 그 예측 가능한 생활이 헛된 시간처럼 보였다. 그래서, 내가 왜 일본에 왔는가란 질문을 자주 했고, 또, 횟수가 차츰 많아졌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겠다고 말했다.
재일교포 형의 어머니이자 일본인이셨던 아주머니께서 나를 잠깐 보자고 하셨다. 처음 뵙는 자리였다. 나는 그 일본인 아주머니께서 같은 멘션 6층에 사시는 것을 그때 알았다. 가끔 나를 보았다고 말씀 하셨고, 잘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여겼는데, 이게 무슨 일인야며, 내게 물으셨다.
나는 답했다.
“제가 일본에 온 이유는 일본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일본을 배우러 왔고, 지금처럼 일본에 와서 혼자 요리하면, 나중에 시간이 흘러 한국에 돌아갔을 때, 이곳에서의 시간이 의미 있었다 라고는 말 못 할 것 같습니다. “라고 말하자,
강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겠다고 말씀하시고는, 지금은 떠나갈 때가 아니라고 말리셨다. 우선은 일본어가 서툴고, 일본어가 서툴면 사기당하기 쉽다. 일본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착한 사람은 아니니, 위험하다. 그러니, 일본어 실력이 더 나아지면, 그때 나가도 늦지 않다.” 는 말씀 이셨다.
타국에서 듣는 따뜻한 걱정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이제부터 일본에서 혼자라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재일교포 형은 내게 고집이 세다며, 혀를 내찼다.
그러나 나는 짐을 쌌다.
이런 분들께 이 책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 유학 정보서가 아닌, 유학 경험 에세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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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유학부터 도쿄에서의 회고록까지 모든(총14장)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